꿀정보

[오늘의 인물] 24년 2월 22일 목요일

행복한우주먼지 2024. 2. 22. 16:24

1927년 2월 22일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아버지 최경일(崔鏡一)과 어머니 김신실(金信實) 사이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평양 종로국민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광복과 함께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가 서울대학교로 통합되면서 194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전문부 치의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관악기연주자의 교합상태에 관한 연구'로 치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0년 초 도쿄로 건너가 오자와 히데오(小澤秀夫)에게서 재즈 음악과 색소폰 연주법을 배웠다. 일본에서 주일미군 캠프촌을 순회하는 악단을 조직, 본격적인 재즈맨이 되었으며 이 때 일본 문인들의 이름을 본따서 요시야 쥰(吉屋潤, 길옥윤)으로 예명을 정했다.

1960년 도쿄 스윙 오케스트라 악단을 인솔하고 서울에 귀국하여, 1962년에 이봉조의 권유로 당시 1집 앨범을 준비중이던 현미의 1집에 수록된 길옥윤의 정식 데뷔곡 <내 사랑아>라는 곡을 발표하였다.

 

실제로 이 인연으로 길옥윤 고별 콘서트에서 현미가 이 곡을 첫무대로 선보였다.

 

1966년 다시 서울에 왔을 때 〈서울의 찬가〉를 동아방송을 통해 발표하고, 그 해 연말 미국에서 돌아온 인기가수 패티김과 결혼, 신혼여행을 겸해 베트남을 위시하여 동남아와 유럽 등지로 순회공연 길에 올랐다.

홍콩에서 「빛과 그림자」를 발표했다. 첫딸 정아가 태어났다. 축하의 의미로 정아가 만 20세가 되어 성인이 된다는 뜻으로 〈1990년〉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뉴욕에서 「이별」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1973년 패티김과 이혼했다. 1974년 TBC TV 주최 도쿄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사랑은 영원히〉라는 곡으로 패티김이 입상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곡으로 신인가수 혜은이를 발굴했으며, MBC TV 주최 서울가요제에서 혜은이가 부른 〈당신만을 사랑해〉로 그랑프리를 획득했다.

 

1977년 11월에는 한국을 대표하여 도쿄 야마하 재단 주최 세계가요제에 참가하였으며, 뉴질랜드에서 열린 제1회 태평양가요제에 혜은이가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했다.

1979년 12월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인 전연란(全蓮蘭)과 재혼했다.

 

1989년 신사동에 ‘창고(倉庫)’라는 음악 업소를 운영하였는데 부채가 늘어나자 1992년 업소를 도쿄 아카사카로 옮겼다.

도쿄에서 〈애수(哀愁)의 색소폰〉이라는 그의 히트곡 연주곡집을 CD로 출반했다.

 

1994년 10월 부산 동래시민병원에 입원했을 때 〈부산찬가〉·〈2002년〉 등을 작곡했으며, 1995년 2월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투병 중에도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300여 곡을 악보에 기록하였다.

 

 폐암과 척추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3월 21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예협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운구 때 패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눈물로 불렀다. 

 

문화훈장 보관장을 추훈받았다.

10월 23일 세종로 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를 서울시에서 건립하였다.

 

 

#여담

 - 패티김혜은이현인장혜리 등 당시 쟁쟁한 가수들의 많은 히트곡들을 작사, 작곡했다.

 - 패티김과 결혼했으나 6년 만에 이혼했으며 슬하에 딸이 있는데, 그 딸은 패티김이 키웠다.

 

 

 

 

#천재 작곡가 남편 길옥윤과의 만남 [연중 라이브] | KBS 210108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9a50MynSo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