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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4월 2일 화요일

행복한우주먼지 2024. 4. 3. 16:47

양기탁

 

한국의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

 

1871년 4월 2일 출생

1938년 4월 19일 사망 (향년 67세)

 

제2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언론인. 1904년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과의 합작하에 영자(英字) 신문인 <코리아 타임즈>를 발간했고 한문 신문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주필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 되었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여 영어를 공부했다.

1897년 독립협회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영국인 선교사 J.S 게일이 저술한 한영자전(韓英字典) 편찬을 도왔고 같은 국적의 언론 기자인 E.T 베셀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를 발간했고, 궁궐에서 영어에 능통함을 인정받아 궁내부 영어 통역사로 활동했다.

 

1904년 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발행을 중단한 독립신문을 대신해 순한글과 영문판으로 발행, 주필로 활동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07년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대한 매일 신보를 이용해 전국으로 확산시켰으며, 안창호와 신민회를 조직하여 독립 운동에 참가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1915년 4월 출옥하였다.

 

이후 북간도·연해주 방면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8년 중국 톈진에서 상하이로 가던 도중 일본제국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중국 체류금지 처분을 받고 전라남도 고흥에 유배되었다가 이후 출옥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 주역으로 참여하여 편집고문에 취임했다.

 

1921년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봉천성 등지를 전전하다가 미국 의회 의원단이 조선에 방문하자 조선의 독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이후 가출옥하여 만주로 건너가 의성단을 결성했다.

 

1931년 11월 상하이로 도항하였으며 1933년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국무령에 선출되어 1935년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1938년 중국 장쑤 성에서 와병(臥病)을 앓다가 순국(殉國)했다. 향년 68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1993년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문민정부 때 중국 장쑤 성에 매장되었다는 유해를 발굴함에 따라 그 해 유해가 서울특별시로 운구되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04년부터 서울신문 사옥 1층 로비에 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흉상으로 세워져 있다.

 

여담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은 처음에 러일전쟁 관련 취재를 위한 입국이었지만 일제가 한국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일제의 침략상을 고발하는 《대한매일신보》를 양기탁과 함께 창간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이 치외법권을 이용하여 당시 편집인이었던 양기탁이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으로 사망했을 때 대한매일신보 건물에서 태연하게 태극기를 걸고 대놓고 성대한 잔치를 여는 등 일본의 입장에서는 각종 눈앳가시같은 행동을 벌이던 신문사이기에 어떻게든 잘라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