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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3월 30일 토요일

행복한우주먼지 2024. 3. 30. 14:35

 

나도향

1902년 3월 30일 출생

1926년 8월 26일 사망 (향년 24세)

대한민국 소설가

 

나도향은 본명이 나경손((羅慶孫)이었고 할아버지가 한의사, 아버지가 양의사라 집안의 강권으로 경성의전에 진학했지만 소설을 쓰고싶다며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할아버지가 ‘경사스러운 손자’라는 뜻으로 지어준 경손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벼꽃 향기라는 뜻의 도향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집에서는 잠시 떠돌다 사라지는 도향으로 바꿔 그가 단명을 했다고 생각했다.

 

 

나도향은 1902년 음력 3월 30일 한성부 서서 용산방 청파1계에서 양의사인 아버지 나성연(羅聖淵)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학에 뜻을 두었기에 1919년 중퇴한 뒤 조부의 장롱에서 돈을 훔쳐 와세다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당시 부친 나성연은 본업인 의사일을 멀리하고 은둔하여 독서에만 몰두하였고, 조부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이 때문에 나도향은 학비 부족으로 몇 달만에 귀국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귀국 직후인 1920년에는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22년, 《백조》 창간호에 소설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1922년 11월 21일부터 1923년 3월 21일까지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20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줄기차게 소설을 써나갔다. 

 

1925년, 《여명》 창간호에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하였는데, 이 소설은 한국 근대 문학사상 가장 우수한 단편 중의 하나로서 인정받으며 나운규에 의해 영화화된 것으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작가 자신과 동료 예술가 지망생들을 모티브로 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치는 일종의 습작기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등을 고비로 빈곤의 문제 등 차츰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극복의지를 드러내는 주인공들을 내세움으로써, 초기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사실주의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변모의 현실화로 나타난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이다. 

 

이토록 많은 작품을 쓰며 작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1926년 8월 26일 경기도 경성부 남대문통5정목 32번지(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제분협회빌딩 옆 자리)의 자택에서 위장병으로 인해 24세의 너무 아까운 나이로 요절했다

 

연애/짝사랑

안타깝게도 나도향은 생전 몇 번의 연애 및 짝사랑을 했으나 모두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안동보통학교 교사 시절에 일본인 여교사 마츠모토와 교제했지만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 그것도 교사와의 결혼은 모든 면에서 도저히 불가능하여 끝내 헤어졌고 백조 시절에는 기생 단심과 깊은 관계까지 갔으나 가난한 나도향은 기생인 단심이 부잣집의 첩으로 팔려가는 것을 막지 못하여 결국 그녀와 헤어졌다. 

 

 

1925년 초에 마산에서 머물때는 장영옥이라는 여성을 짝사랑했지만 하필이면 이 즈음 폐결핵에 걸려 단념해야 했다.

 

1925년 중순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후에는 얼굴도 예뻤지만 동경여자사범학교(현 오차노미즈여자대학)를 나온 수재에다 글재주가 있어 유학생들의 연모의 대상이었던 최의순을 짝사랑했지만 그녀는 나도향의 고백을 거절했고 결국 최의순이 부자에다가 색동회 창립자 중 한 사람인 아동문학가 진장섭과 결혼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나도향은 실연의 아픔을 뒤로하고 귀국하여 고향 집으로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여담으로 병으로 몸이 수척해지고 가난 때문에 차림새도 좋지 않아 고향 가족들이 돌아온 나도향을 보고 처음에는 웬 거지가 왔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묘지는 본래 서울 이태원의 공동묘지에 있었지만, 이태원이 개발되면서 묘지를 이장하였다가 행적이 묘연하다고. 나도향의 후손들도 그의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소설
※ 주로 수위 높은 성인향의 소설을 남겼다. 대부분의 소설이 치정관계를 다루었다.
  • 소설편집추억 (1921년)
  • 젊은이의 시절 (1922년)
  •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1922년)
  •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1922년)
  • 환희 (1923년) - 유일한 장편소설.[12]
  • 십칠원 오십전 (1923년)
  • 속 모르는 만년필 장사 (1923년)
  • 춘성 (1923년)
  • 여이발사 (1923년)
  • 은화 백동화 (1923년)
  • 행랑자식 (1923년)
  • 자기를 찾기 전 (1924년)
  •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1924년)
  • 의사의 고백 (1925년)
  • 계집 하인 (1925년)
  • 벙어리 삼룡이 (1925년) - 3차례 영화화되었다.
  • 물레방아 (1925년) - 1966년 이만희 감독이 영화화하였다.
  • 꿈 (1925년)